당나라 군대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군사 조직을 의미하는 동시에, 현대 한국 사회에서 기강이 해이하고 통제력이 상실된 오합지졸 집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역사적 실체로서의 당나라 군대는 초기에 강력한 정복 전쟁을 수행하며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군림했으나, 왕조 후기로 갈수록 체계가 무너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 이 용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조직력이 결여된 군대나 단체를 조롱하는 관용구로 자리 잡았다.
당나라 초기 군사력의 핵심은 부병제(府兵制)였다. 부병제는 농민이 평시에는 농사를 짓고 전시에는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가는 병농일치제적 성격을 띠었다. 이를 바탕으로 당나라는 돌궐을 복속시키고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에 개입하는 등 대규모 원정을 수행했다. 당시의 당나라 군대는 체계적인 훈련과 강력한 중앙 집권적 통제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8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부병제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토지의 사유화가 심화되고 농민층이 몰락하면서 징집이 어려워졌으며, 이를 대신해 직업 군인을 고용하는 모병제(募兵制)가 도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변방의 군사 지휘관인 절도사(節度使)들의 권한이 비대해졌고, 이는 결국 '안사의 난'과 같은 대규모 내란으로 이어졌다. 군대의 충성 대상이 국가가 아닌 개별 군벌로 옮겨가면서 군 기강은 극도로 타락했고, 이는 당나라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당나라 군대'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굳어진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나당 전쟁 당시 신라군에 비해 당나라 군대의 기강이 문란했던 사례가 전해 내려왔다는 설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나라 말기 군대의 무능함을 목격한 사람들이 과거의 강대국이었던 당나라를 빗대어 반어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가설도 있다.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체계가 없는 집단을 멸시하는 표현으로 정착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이 용어는 주로 군대 내의 훈련 상태가 미비하거나 상명하복의 질서가 무너진 상황을 지적할 때 쓰인다. 비단 군사 조직뿐만 아니라 행정 기관이나 기업 등 일반 조직에서도 업무 효율이 극도로 낮고 위계질서가 없는 경우에 '당나라 군대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역사 속 당나라 후기 군대의 무질서한 모습이 언어적 유산으로 남은 결과라 할 수 있다.